2009년 6월 12일 금요일

[펌]미드, 무엇을 바꿨나?

미드효과 해부
2007.05.29 / 김혜선 기자

미드엔 뭔가 특별한 게 많다. 한국 드라마에 자극을 주고, 한국영화의 강력한 라이벌로 대두한 미드를 들춰본다.

미드 열풍이 거세다. 얼마나 거센지 아예 미드를 극장에서 상영하는 이벤트까지 생겼다. 케이블 채널 OCN이 오는 26일 오후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CSI 특별시사회’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원조 미드‘로 불리는 <CSI>의 미국 방영분 중 최신 시즌인 <CSI 라스베가스> 시즌7, <CSI 마이애미> 시즌5, <CSI 뉴욕> 시즌3의 최고 에피소드를 골라 극장에서 상영한다. “웬만한 영화에 뒤지지 않는 <CSI> 시리즈 특유의 카메라워크와 현장감을 극장에서 느끼게 하겠다”는 게 OCN 편성팀의 기획의도다. 미드가 극장에 걸리다니, 그럼 그 미드는 미드인가 영화인가?

★미드엔 뭔가 특별한 게 많다

요즘 직장인 둘이 모이면 대화의 중심은 미드다. 셋이 모이면 당연히 더 많은 미드 얘기로 꽃을 피운다. 회식 자리에선 어떤 어떤 미드를 본다는 걸로 통성명을 하고, 좋아하는 미드 캐릭터를 서로 견주느라 점심시간이 지나가는 것도 모른다. 미드가 그렇게 좋을까? 그렇게 재밌을까?

SBS 라디오 ‘뉴스앤조이’가 최근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많은 이들이 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민국 성인의 40.1%가 미국 드라마를 보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중 여성이 43.2%이며, 20대가 54%란다. 영화 관객층과도 상당부분 겹치는 이 미드 시청자 층 가운데 자신을 미드 폐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6.8%다. 그래서 SBS는 심지어 "전국민의 40%가 시청한다는 미드 열풍 시대에 시청자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오는 24일부터 <프리즌 브레이크>를 한국말 더빙으로 방영하기로 했다.

의류업계, 화장품업계, 가전업계, 가구업계, 식품업계까지 미드 효과를 실감하고 있다. 국내 유명 제과 체인에서 성년의 날을 맞아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사라 제시카 파커의 이름을 딴 ‘사라 제시카 파커 러블리 케이크’를 출시하지 않나, 출퇴근 시간 버스나 지하철에서 미드나 일드를 보기 위한 PMP(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 동영상이 재생되는 MP3 플레이어 등의 판매가 증가하지 않나. 케이블 TV로 장시간 미드를 감상하는 미드 폐인을 겨냥한 1인용 소파도 제작,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다. <프리즌 브레이크> <위기의 주부들> <그레이 아나토미> <프렌즈> <ER> <섹스 앤 더 시티> 등에 수록된 배경음악을 한데 모은 미드 관련 OST도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국내 DVD 시장에서 미드 타이틀 박스세트가 제법 팔리고 있다는 사실은 미드 효과를 반증하는 또 하나의 사례이기도 하다. <프리즌 브레이크> <24> <그레이 아나토미> <롬> 등의 DVD 박스세트 판매가 상당하고 재주문도 많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홈비디오의 강명구 부장은 ”2001년부터 ‘미드의 고전’ <프렌즈> DVD를 출시해왔다. 완전히 일반 대중화가 된 건 아니지만 DVD 시장에 미드 타이틀 시장이 형성된 건 사실이다. 현재 전체 워너 DVD 매출의 35%를 차지할 정도“라고 설명한다. 미드 타이틀이 모두 디스크가 여러 장인 박스세트임에도 불구하고 구매와 소장 욕구를 자극한다니 미드족이 아닌 일반인들의 관심도 상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특이한 건 미드 타이틀을 구매하는 이들에게는 스페셜 피처의 유무도 별 상관이 없다. 강명구 부장은 ”<롬>의 경우 일반판과 스페셜 피처 디스크가 들어 있는 한정판 중 일반판의 판매량이 훨씬 많았다“며 ”여타 DVD 타이틀과 달리 미드 타이틀을 구매하는 이들은 서플먼트의 유무나 타이틀의 완성도보다는 연속성 있는 미드를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중요시해 구매하는 듯하다“고 설명한다.

구석구석 그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미드 효과'는 사실상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몰아치기 시작했다. 미드 열풍의 진원지는 인터넷 강국답게 불법 다운로드였다. 이후 미드족의 출현을 감지한 OCN, 수퍼액션 등 무료 케이블 채널의 24시간 연속방송 이벤트 편성을 통해 대중적으로 확산됐다. OCN은 ‘<CSI> 스페셜 데이’라는 이름하에 <CSI>의 인기 에피소드들을 24시간 방영하는 특별편성으로 눈길을 끌었다. 특별편성을 준비했던 하나영 편성PD는 “미드를 그간 띠 편성을 통해 특정 시간에만 방송했었는데, 영화처럼 하루 종일 편성을 하면 어느 정도 파워를 낼 수 있을까 검증해보자는 궁금증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 결과는 예상보다 폭발적이어서 평소 시청률의 2.5배가 나왔다. 케이블에서 그 정도 시청률을 내는 건 축구 생중계나 최홍만 시합 생중계 정도. 이후 <프리즌 브레이크> <섹스 앤 더 시티>의 ‘스페셜 데이’ 24시간 방송을 진행한 온미디어 그룹은 “미드의 열풍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

지금의 미드 열풍은 몇 년 전 <프렌즈> <섹스 앤 더 시티> 같은 문화적 미드들이 불러일으킨 열풍과는 또 다르다. 최근 미스터리, 메디컬 드라마, 스릴러, 액션 등의 ‘장르성’이 강화된 <히어로즈> <프리즌 브레이크> <그레이 아나토미> <로스트> 등의 미드들이 인기를 모으면서 미드 효과는 대한민국 문화 전반에 다각도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게 감지되는 것은 공중파 TV 드라마의 변화다.

★미드, 한국 드라마의 자극제



최근 지상파와 케이블에서 방송 중인 드라마들 가운데 미드와 비교를 피할 수 없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MBC 월화 드라마로 방영된 고현정, 하정우 주연의 수사물 <히트>는 과학수사를 표방하는 컨셉이 <CSI> 시리즈를 연상케 한다는 비교를 받았고, KBS의 <외과의사 봉달희>는 의사들의 다양한 성장기와 관계들을 그렸다는 점에서 <그레이 아나토미>와의 절대 비교를 피할 수 없었다. 막 방영을 시작한 강혜정, 차태현 주연의 드라마 <꽃 찾으러 왔단다>는 장의사 집안이 등장하고 죽음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올드 미드’ <식스 핏 언더>와 비교되고 있다. 각종 포털사이트 블로그에선 미드족들이 벌써 “캐릭터가 너무 유사하다,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 같다”며 아우성이다. 공항 파견을 나온 국정원 요원(이정재)과 공항공사 운영실장(최지우)을 등장시켜 공항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에어시티>는 미국 LA 국제공항을 배경으로 보안, 불법 이민, 미아 찾기, 마약 밀매 등 공항 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을 다뤘던 미드 <LAX>를 연상시킨다는 미드족들의 시선을 받고 있다.

<히트> 제작발표회에서 “한국인에게 익숙지 않은 미국식 멀티 플롯을 가져가되 한국적인 수사물을 만들겠다“는 김영현 작가의 말은 지금에 와선 여러 모로 해석된다. 한국 드라마가 미드를 따라잡기는 상당히 어렵다. 미드를 연상시키는 캐릭터와 짜임새로 미드족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형사 드라마 <마왕> 같은 경우도 있지만 지금도 공중파에서 방영되는 대다수 드라마가 불륜극 내지 시대극이라는 점은, 장르의 토양이 역시나 척박한 한국 문화 콘텐츠 시장에서 새로운 시도가 그만큼 쉽지 않음을 반증한다. 미드의 장점은 입체적인 캐릭터들을 내세운 치밀하고 정교한 구성이다. 영화는 제한된 시간에 모든 걸 넣어야 하지만 드라마는 치밀하게 펼쳐서 수습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장점이 있고, 질 좋은 미드는 그것을 제대로 해낸다.

미드에 열광하는 시청자들을 보면서 한국 드라마 제작자들의 고민은 커진다. 미드가 많은 이들을 매료시키는 이유는 참신한 소재를 취하면서 사건과 에피소드를 엮는 짜임새가 우리가 겪는 실제 삶과 너무도 유사하다는 것이다. 한 회로 완결되면서도 실마리를 잡고 다음 회로 넘어가게 만드는 연속성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는 생생한 묘사를 접하며 시청자들 혹은 관객들이 현실감 넘치는 상황에 빠져들어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다. 미드 붐을 곳곳에서 피부로 느끼게 된 2007년, 미국 드라마의 새로운 트렌드들이 속속 케이블로 접수되고 있으니 미드 열풍은 당분간 식을 전망이 없어 보인다. 한미 FTA 이후 방송시장 개방으로 해외 채널들이 국내에 직배하는 드라마들이 더더욱 많아질 것이고, 그래서 이참에 대대적인 체질 개선으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힘을 얻고 있다.

과거 한국형 SF 블록버스터를 기획하고 제작했던 충무로 모 제작사 K대표는 열혈 미드 마니아다. 지난 2년간 자신의 컴퓨터 하드에 1,300편의 미드를 저장해놓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야릇한 표현이지만 그 이후 실제로 ‘한국형 미드’의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K대표는 “한국형 미드가 단순히 미드를 따라하자는 것이 아니라 수준을 그만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자는 뜻이다. 회당 20~40억이 투자되는 미드의 예산을 따라하자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 연출력, 연기를 따라잡자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준비하는 것은 비리 형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리얼한 드라마로, 바깥에서는 “돈 벌기 위해 험한 짓까지도 하지만 가족, 동료 등 자신이 아끼는 이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소프라노스>의 형사 버전이나 <쉴드>의 한국 버전쯤 될 수도 있겠다. '미드의 원조‘로 불리며, 수많은 수사물 시리즈 중 하나인 <뉴욕특수수사대>나 영화 <트레이닝 데이>가 연상되는 것도 당연하다. 현재 이 드라마는 파일럿 대본을 끝낸 상태다.

이외에도 '미드스러운' 과학수사를 표방하며 지하철 수사대, 공항 수사대, 마약 수사대가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여럿 기획됐다 연기되곤 했다. 이유는 대부분 “시나리오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연애시대>의 제작사 옐로우필름이 제작하려 했던 시즌제 드라마 <에이전트 제로>는 그 대표적인 예다. 옐로우필름 오민호 대표는 “70, 80년대 드라마시장이 외화 시리즈에 잠식됐던 상황을 반복하진 말아야겠다. 방송시장이 개방돼서 제리 브룩하이머가 전세계에 와이드 릴리즈하는 미드들이 국내 공중파 프라임타임에 들어오는 걸 막으려면 우리도 시즌제 드라마를 기획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 <에이전트 제로>는 정부 혹은 정부를 돕는 비밀기관에 속한 요원들 이야기다. 사라 제시카 파커나 조지 클루니가 <섹스 앤 더 시티>와 과 함께 성장한 미드의 시스템과 달리 방송사의 편성 스케줄에 들어가려면 신인 대신 스타급으로 포지셔닝을 해서 주목을 받아야 하는 국내 상황으로 인해 <에이전트 제로>는 처음 설경구, 손예진이라는 빅 캐스팅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지난해 말 배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제작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크리에이티브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오민호 대표의 설명은 이렇다. “여러 유명 작가들이 모여 시나리오를 썼지만 캐릭터가 그때그때 마다 바뀌고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게 아니라 옴니버스의 느낌이 더 컸다. 작가들의 마인드를 공유하는 방식을 만드는 데 피 튀기는 노력이 필요했다. 결국 작가 집단도 중요하지만 창의력 있고 추진력 있게 작품의 세계관을 제시할 수 있는 진정한 프로듀서의 존재가 얼마나 절실하고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 그 결과, 9월까진 시즌 1의 24회 에피소드 대본이 나오고, 시즌 5까지 제작할 수 있을 만큼 100개 시놉시스를 준비해놓을 작정이다. 시즌 5까지 만들 수 있는 제작비 750억 원의 펀딩 방식도 고민 중이다. 한 시즌에 800억 원 정도를 들이는 미드와 달리 그 1/5의 제작비로 시즌제 드라마를 제작하겠다는 과감한 발상은 분명 미드 효과에 대한 한국 드라마의 커다란 리액션이다.

★한국영화, 미드가 라이벌?



5월 중순 크랭크인한 오만석, 류덕환 주연의 <우리동네>는 연쇄살인범과 연쇄살인범의 대결을 그린 영화다. 이제 막 영화를 찍기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최근 인기 미드 중 하나인 <덱스터>와 비슷하다는 소리가 들린다. "3년 전 유영철과 화성연쇄살인범이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할까?“라는 궁금증에서 이 기획을 시작했다는 유재학 PD는 "<덱스터>를 따라한 게 아니냐는 소리를 들으니 이제 겨우 촬영을 시작한 입장에서 힘이 빠진다"고 한다.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덱스터>가 국내 방영된다는 소리를 듣고 확인해봤지만 전혀 다른 내용이고, 크게 걱정할 점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영화의 제작사인 아이엠픽쳐스 김민국 한국영화 팀장은 ”스릴러의 외피를 쓴 연쇄살인마에 관한 드라마다. 왜 연쇄살인마가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충분한 시나리오다. 사실 초기 단계에선 누가 이기나 같은 게임 분위기를 담은 ‘미드’형 시나리오 버전도 있었지만 최종 시나리오에서 많이 바뀌게 됐다“고 설명한다.

장진 감독의 <거룩한 계보>는 교도소에서 정재영 일당이 탈출을 시도하기 위해 바깥에서 면회 온 이가 옷에 교도소 구조를 도해한 지도를 그리고 들어오는 설정이 있다. 제작진은 촬영 도중 <프리즌 브레이크>에 형을 구하기 위해 온몸에 교도소 지도를 문신으로 새기고 들어온 동생의 설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DVD를 돌려보며 확인을 해야 했다. 한국영화가 예전엔 비슷한 설정의 외화들을 신경 쓰며 피하려 했지만 요즘엔 미국 드라마까지 신경 써야 하는 시대가 됐다. 가뜩이나 위기인데 미드와도 경쟁해야 한다는 건 더더욱 영화기획자들을 움츠리게 하는 상황이다. 싸이더스FNH의 윤상호 제작이사는 "관객의 요구(need)가 바뀌고 있는 게 분명한데, 영화는 그걸 쫓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드 열풍은 반성의 계기가 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고민이 크다. <그레이 아나토미> 같은 미드를 보면 캐릭터와 그들이 맺는 관계, 그런 관계가 놓이는 시추에이션에서 벤치마킹할 부분은 있다고 판단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지금 당장 충무로가 그런 시도를 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건 아니다. 꼭 그럴 필요도 없다. 대다수 한국영화의 장르적 완성도를 높여온 감독들조차 미드를 거의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드 시청자들이 곧 영화 관객층이다 보니 그들이 열광하는 지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시도를 한다면 어쩐지 한국영화계엔 피곤하게도 느껴지는 미드 열풍은 충무로엔 상당한 자극제로 기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터미네이터>를 보며 그 기발한 아이디어를 부러워했던 이들이 이제는 <24> <CSI> 시리즈를 보며 그 발상과 창의력, 완성도를 부러워한다. 충무로의 모 제작자는 “최근 미드의 다양한 소재와 치밀한 구성의 완성도를 볼 때 다른 어떤 외화들보다도 미드에서 귀감이 될 만한 사례를 찾고, 요소요소를 참조하는 분위기가 크다”고 털어놓는다. 윤상호 제작이사는 “실질적인 기획단계에서 미드를 닮은 기획이 진행되는 건 없지만 프로듀서, 제작팀들 대부분이 미드 마니아이거나 대부분 최신 미드를 돌려보곤 하는 상태다. 시나리오도 미드를 연상시키는 소재나 장르를 지닌 작품들을 많이 받아보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 시나리오들이 반전강박증에 걸려 있다거나, 무늬만 미드와 비슷할 뿐이라는 데 문제가 있지만.

지금 미드는 단순히 미국 드라마의 줄임말이 아니다. ‘영화 못지않은 드라마, 영화보다 잘 만든 드라마’를 칭하는 단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같은 드라마를 만들기를 꿈꾸는 드라마 제작사들과 방송사에서 충무로 감독들을 향한 러브콜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나 지금 장르성 강한 미드들의 인기 때문에 실제로 장르에 강한 <타짜>의 최동훈 감독, <짝패>의 류승완 감독 등의 영입을 고려해 몇 차례 방송연출 제의를 건네기도 했다. 감독들은 모두 “시나리오 문제로 선뜻 결정하진 못했지만 좋은 시나리오, 사전제작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언제든 욕심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옐로우필름의 시즌제 드라마 <에이전트 제로>는 한지승 감독, 송해성 감독 등과 에피소드 연출 여부를 논의 중이다. 이런 움직임은 할리우드에서 영화와 드라마 간의 인력 교환이 빈번하듯 우리 시장도 그렇게 긴밀한 커넥션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들을 반영하는 사례들이다.

류승완 감독은 “노후 대책을 위해서라도 미드와 방송을 공부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긴장된다”고 말한다. "<롬>을 보면 지금의 미드가 영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미드의 크리에이터들인 제리 브룩하이머, 존 밀리어스가 기본적으로 영화를 하던 사람들이다. 그런 만큼 한국의 드라마도 영화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24> 영화 버전을 만든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수사반장> 시리즈를 부활시키면서 영화 버전을 만든다거나 그런 시도들도 더 필요할지 모른다. 방송, 영화, 애니메이션, 만화 등 각 분야가 좀 더 긴밀한 커넥션을 이루고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류승완 감독의 이 말을 실천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사전제작이 어려운 방송의 살벌한 스케줄, 영화와 다른 방송 작가와의 관계, 방송 편성이 담보되지 않는 현실은 감독들의 이동을 두렵게 만든다. 어쨌거나 우수한 시나리오 집단, 그리고 그들을 지휘할 크리에이티브한 프로듀서의 존재, 그리고 애써 만든 콘텐츠를 용기 있게 편성할 방송국 풍토가 엮이면 한국영화와 드라마 간의 긴밀한 협조가 가능하리라는 생각 또한 미드 효과의 산물이다.

★미드, 또 다른 관람문화



한 달에 3~4편 정도 영화를 보던 L씨는 요즘 한 달에 한 번 극장에 갈까 말까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요즘은 주말에 미드를 몰아서 보느라 시간이 다 가버리는 탓이다. 사실 극장에 가도 별로 볼 만한 영화가 없는 지금은 괜히 차비 들이고, 영화표 사느니 공짜나 다름없는 미드를 보는 게 백 배 낫다는 생각이다.

미드가 미친 또 하나의 영향으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이렇게 극장 관객들을 빼앗아간다는 지적이다. 영화가 여가를 이용하는 방법 중 하나고, 그 여가는 시간이라는 비용을 지불한다. 그런데 미드 열풍은 이제 영화를 소비할 것인가, 미드를 소비할 것인가 하는 관객들의 선택을 요구한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영화보다 미드를 소비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영화인회의 김도학 박사는 “한국영화 가장 안 되던 때가 <6백만불의 사나이> <두 얼굴의 사나이> 같은 외화 시리즈들이 방송국 프라임타임을 장악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공중파들이 황금시간대에 미드를 배치하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한국영화 관객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제한된 시간에 이동 비용 없이 콘텐츠 비용도 거의 지불하지 않고 봐도 되는 미드는 극장 관람문화, 영화 소비패턴에 이렇듯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반대로 미드의 플롯, 캐릭터를 모방한 영화가 나온다면 그리 성공할 것 같지 않다는 시선도 있다. “미드를 보는 데 큰돈을 들이지 않다가 7천 원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라는 뜻이다. 그간 미드 열풍을 다룬 미디어의 시각에는 다소 거품이 있지만 미드 효과가 문화 전반에 적지 않은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미드 효과는 충격과 각성, 그리고 과제를 남겼다. 그중 가장 큰 것은 한국에서 미드에 필적하는 드라마, 영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과제, 규모를 벤치마킹하는 게 아니라 그 시스템과 정서, 구성력 등을 벤치마킹하는 과제를 만든 것이다. 미드라는 무시무시한 콘텐츠의 구석구석을 살피는 건 이제 우리 몫으로 남았다. 미드를 폐인들이 넋 놓고 즐기는, 물 건너 온 오락이 아니라 영상문화의 자양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말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