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2일 금요일

[펌] 이막시작

저는 수원에서 인생 일 막 일장을 끝내고 “핸드다운 닭요리 체인사업”을 이제 막 시작한 임 응천이라고 합니다.
1998년 7월부터 2004 8월 1일까지 초기 몇 달은 실내포장마차를 하였으나 나머지 세월은 닭요리만을 하였습니다.
1964년 8월 2일생이니까 41살 감히 인생이라고 말하기엔 좀 어리지만 두서없는 글 한 타 한 타 치는 것이 안돼 보였는지 아내가 올리게 됨을 알려드립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힘겨운 짐을 짊어지고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세상의 일부이기에 제 삶의 무게만큼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것이 끝이구나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이였습니다.
삼성전자 수원공장에서 회사생활(10년 정도)하면서 모아둔 돈으로 형, 누나, 본가가 어려워 도움을 주고 생활하기가 빠듯하여 호프집을 하였는데 그나마 종업원에게 돈을 빌려주어 떼이고 달아나고 급기야는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시작한 가게는 또 다시 문을 닫게 되고 반복되는 생활에 짜증과 자기학대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수입이 없어서 생활하기가 힘들었고 아내와 갓 태어난 자식은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가게 시작할 때 약간의 사채는 날로 불어나고 앞으로의 생활이 막막하였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돌상도 외삼촌이 도와주셨고 아내는 이혼을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생각하며 어리석게도 소주에 수면제를 먹은 기억까지 눈을 뜨고 보니 응급실 가족들이 생각났습니다.
집으로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제가 생각하고 꾼 꿈은 이것이 아닌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참으로 너무 멀게 느껴졌습니다.

이혼만은 안돼 라는 생각으로 정신을 차렸습니다.
몸은 좀 피곤하고 힘들더라도 딴 생각이 나지 않는 육체적 노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밤낮이 바뀌어 막 교대 12시간 근무 너무 힘들었습니다.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장인, 장모님 등 처가 식구들이 달라질 것이라 믿으며 그렇게 2년을 생활하며 빚도 어느 정도 정리하고 적응할 무렵 imf로 다시 시련이 왔습니다.

사는 것은 정말 마음대로 쉽게 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깨끗하게 다시 시작은 없는 듯 합니다. 조금씩 변화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모습인 것 같습니다.
다시 살길을 찾아서 요리에 관심이 많아 정부에서 3월간 실시하는 재취업 교육을 받았습니다.
남자가 요리학원은 왜 다닐까 의아해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저와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이 많아서 힘이 되었습니다.
막상 학원은 다녔지만 시작하려고 하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음식선정, 위치 그중에서도 경제적인 문제가 제일 큰 것 같았습니다.
가족은 힘들 때 가장 가까이에서 힘이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장모님께서 잘 해보시라고 1,000만원을 주셨습니다. 그때 제게는 너무 큰 돈으로 여겨졌습니다. 희망을 주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금도 작은 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렵게 시작 시련은 끝이 없었습니다.
내 사업만 하면 성공하리라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고 더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저의 주 특기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으로 다른 길을 찾았습니다.
실내포장마차는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메뉴로 독특함 없이 식상한 것이 실패 원인 같았습니다.
도계장을 2년 다녔고 주위에 전문가들도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닭으로 관심이 쏠렸습니다. 그때 한창 뼈 없는 치킨이 전국적으로 유행했으니 새로운 희망으로 뼈 없는 치킨을 시작하였습니다.
주방은 제가하고 아내는 배달을 하여 매출도 향상되고 수익도 늘었지만 이 한 가지로 계속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되어 다른 메뉴를 찾게 되었습니다.
염지 제를 구하여 나름대로 배합하고 튀기며 매콤한 후라이드 치킨, 양념치킨, 저렴한 통 바비큐, 이 모든 과정을 제가 직접 하였습니다. 핸드다운 이름은 생소하지만 맛은 낯설지 않게끔 피나는 노력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닭을 저렴하게 팔고 열심히 일한 결과 상가에 소문도 좋게 낫습니다.
“하면 되는 구나”하는 용기도 생겼습니다.
몸에 무리가 왔는지 어릴 때부터 좋지 않았던 허리가 자꾸만 아파왔습니다. 아내는 배달 중 승용차와 정면충돌하여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니었지만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생기고 장인, 장모님 뵐 면목이 없어 죄스러운 마음뿐이었습니다.

작은 집이라도 장만하자는 말을 뿌리치고 시내 대학가에 위치한 가게가 나와서 자리를 옮겼습니다.
쉽게 빠지리라 생각했던 전의 가게는 나가지 않고 입구는 뒤쪽 계단은 무려 45개 바쁜 현대인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아마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더 악조건인 없을 것 같은 이제 고통도 자꾸 반복되면 고통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힘든 것이 익숙해졌습니다.
모든 일은 시작이 있으면 끝도 반드시 있습니다.
나름대로 원인분석을 하였습니다. 해결책도 있었습니다.
위치가 좋지 않기 때문에 한번 온 손님이 다시 찾아야 되고 맛은 두말할 필요도 없으며 일단 닭 하면 우리 가게를 손님들에게 인식시켜야 하기 때문에 친절하게 공손한 마음으로 대하였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찾아오는 손님이 항상 고맙게 생각되어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마음이고 음식을 할 때도 좀 더 정성들여 하였고 재료도 신선하고 깨끗하게 사용하였습니다.
손님들이나 가족들이 제가 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요리가 즐겁고 행복해 집니다.

항상 고통이 먼저고 행복이 나중인 것 같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만 그 고생은 바람처럼 빨리 지나가지 않습니다.
1년 정도 이중생활을 하니까 그간 모은 돈은 벌써 바닥이 나고 부채가 늘어나자 몸도 마음도 피곤하고 사람이 너무 힘들면 힘들다고 말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나의 길인가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털어버릴 수 있는 것은 버리고 최소의 것만 가지고 생활하자고 하며 집도 빼고 한동안 가게에서 생활한 적도 있었습니다.  안간힘을 쓰고 지키고자 했던 가정이 무너질까봐 또 다시 겁이 났습니다. 영성이는 외삼촌댁에서 생활하여 그나마 위로가 되었습니다.
시골 농사일이 이른 새벽부터 캄캄한 밤까지 햇볕에서 하루 종일 쉬는 시간 없이 일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아내는 애써 참으며 제게 용기를 주곤 하였습니다.

찾는 손님이 많아지고 핸드다운 입소문이 나면서 희망이 생겼습니다.
아내가 제일 존경하고 따르는 스승님이 계신데 올 추석에도 인사드리고 왔습니다. 언제나 반갑게 맞아 주시고 칭찬의 말씀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합니다. 학교 때 아내는 꽤 괜찮은 학생인 것 같았습니다. 영성이와 아내에게 죄책감이 들 때면 제가 할 수 있는 일 오로지 음식 하는 것입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내는 요리하는 것을 싫어하여 제 실력이 뛰어나 보입니다.
사람들 각자 자기의 장단점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다 주는 것 같습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낙지를 볶다가 닭을 접목하여 핸드다운 닭요리의 대표 낙닭 바비큐가 탄생하였고 지지고 볶고 삶고 요리는 참 재미있습니다. 메뉴가 너무 독특하고 누구도 쉽게 생각하지 않는 재료를 첨가하여 새로운 맛의 창조는 신선한 충격 이였습니다.
아구를 이용한 아구닭찜, 갓 구워낸 베이크 치킨, 속살까지 부드러운 닭쌈, 매콤 새콤 달콤한 닭 깐풍기, 바비큐 소금구이, 바비큐 매운양념, 날개로 만든 리틀 윙, 핫윙불고기 바비큐, 매콤하면서도 담백한 후라이드 치킨 등 새로운 퓨젼 요리를 선보이며 차별화된 경영방식, 지역 특색에 맞는 메뉴 개발, 신선한 재료의 사용과 관리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찾는 명소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첫 방송 때는 조류독감으로 전국의 모든 치킨집이 어려웠지만 우리는 꿋꿋하게 살아남았으며 가문의 영광 평생소원이 이루어 졌습니다.
제게도 기회가 오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은 예감도 들었습니다.
개인적인 힘으로 방송에 보도되고 저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세상은 공평한 것 같고 방송국에도 물론 고맙습니다. 머리 숙여 인사 올립니다. 사실 처음에는 좀 부끄러웠고 당황했으나 나중에는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훗날 제가 받은 사랑의 일부라도 보답으로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싶습니다.

글자 하나 선택하는데도 조심스러워집니다.
처음 시작할 때 창업자금이 많았으면 쉽게 시작했을 터인데 1,000만원으로 점포계약, 인테리어, 집기 등 도저히 엄두도 낼 수 없었지만 꼭 필요한 것만 하여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개점하였습니다.
같은 길을 반복하지 않게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신규 창업을 꿈꾸는 예비 창업자들이 실패를 줄이고 성공할 수 있도록 성심 성의껏 도와주고 싶습니다.
이제 인생 이막을 준비하면서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눈물과 한숨이 가득하지만 열심히 산 보람도 있는 것 같아 소주 한잔에 과거를 잊어버리고 앞으로 희망적인 일만 생각하고 싶습니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소주 한잔 후 노래방가면 태진아씨의 “동반자“를 즐겨 부르는 아내가 늘 곁에서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 같습니다.
힘들었던 과거는 어느새 추억이 되어 더 큰 자아로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 같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니 신납니다.

아내는 장모님이 수호신이라고 말하지만 제게는 아내가 그런 존재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을 여기까지 와준 아내가 고맙고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준 영성이가 있어 행복하고 장인, 장모님 그리고 처남댁 제대로 인사 못 드렸는데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우리 가게를 찾아준 더 많은 고객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ps : 아내는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여 아마 마지막 자존심으로 훌훌 털어버리고 앞으론 함구하고 살 것 같습니다.

보도자료:SBS 생방송 투데이 “돈이 보이는 세상” 방영(2004.1.13)
         SBS 모닝 와이드 “황금알 프로젝트” 방영(2004.4.10)
         iTV 오감만족 웰빙세상 방영(2004.7.13)
         SBS 임성훈 “잘먹고 잘사는 법“ 방영(2004.8.21)
         MBC "찾아라 맛있는 TV" 방영(2004.8.28)
         sbs 모닝와이드 “우리 맛 대탐험”방영(2004.9.21)

 

출처 : 다음까페 직장인 커뮤니티 2jobs cafe.daum.net/ihave2jo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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